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짜릿짜릿 쇼핑스토리/일상다반사

공손함이 지나치면…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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말과 글을 다루는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사람이 좀스러워지나 보다.
신문,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특히 인터넷에서 넘쳐나는 잘못 쓰여진 말이나 글을 보면 눈에 거슬린다. 물론 우리말을 바로, 정확하게 쓰고 구사하는 게 쉽지 않고 나 또한 틀리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. 그런데 그 틀린 정도와 범위가 지나쳐 잘못 쓰이는 상태로 굳어져 문법에 맞게 행세하는 것을 보게 되면 기가 찰 노릇이다.
여러 가지가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가장 듣기 싫은 말이 공손함이 지나쳐 짜증나게 들리는 존대의 남발이다. 얼마 전 운동화를 사러 아울렛에 갔다가 겪은 실제 상황이다.

나: 이거 275 사이즈 있어요?
예쁜점원: 없으세요. 그건 지금 270까지 밖에 없으세요.
나: (다른 걸 가리키며) 그럼 이건 275 있나요?
예쁜점원: 그 상품은 여자용이세요. 남자용은 이쪽에 있으세요.

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한다. 얼마나 귀한 물건이기에 저렇게 존대를 받을까 싶다. 꾹 참고 다른 물건을 고른다. 이윽고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들고 계산대에 섰다.

나: 얼마죠?
예쁜점원:
네, 85,000이세요.
나: 후흡~~ (심호흡을 한 번 하고) 카드 여깄어요.
예쁜점원: 일시불이세요?
나:
예쁜점원:
(카드와 영수증을 내밀며) 영수증 여기 있으세요.

이쯤 되면 그 예쁜 얼굴은 두번 다시 보기 싫어진다. 도대체 언제부터 저런 엉터리 존대가 일상에 자리잡게 됐는지 모르겠다. 그 예쁜 점원은 운이 나빠 인용된 것뿐이지 비슷한 예는 숫하게 많다.

“키 꽂혀 있으세요. 발레파킹비 2000원이세요.”
“아메리카노 두 잔이세요.”
“3개월 할부세요.”

백 번 양보해 손님을 공손하게 대하려는 기특한 마음과 어법의 무지에서 나온 잘못이라고 쳐도 밥값 낼 때, 물건 살 때, 전화 받을 때 마다 수시로 들리는 저런 소리는 정말 귀에 거슬린다. 

한 번은 또 이런 일도 있었다. 행사장에서 뭘 좀 알아보기 위해 안내원을 찾아 물었더니 그 ‘고객감동 교육’ 을 확실하게(?) 받은 안내원이 “그건 저쪽 카운터에 가서 여쭤보세요.” 라며 생글거린다. 난 속으로 이렇게 말할 수 밖에. '예, 조카뻘도 안 되는 새파란 어린 안내원께 여쭤볼께요. 가~암사합니다.'



무리 문법에 존대에는 주체존대와 객체존대, 상대존대가 있다.
주체존대는 문장의 주체를 높이는 것으로 이를 테면 “부장님께서 지시하셨다” 가 예가 된다.
객체존대는 주로 문장의 목적어를 높이는 것으로 “이 상황을 상무님께 보고 드려라”고 말하는 경우다.
상대존대는 말을 직접 듣는 사람을 높이는 것으로 “어디 편찮으세요?” 같은 문장에서 찾을 수 있다.

운동화가, 커피가, 자동차 키가 존대 받는 것은 모두 주체존대의 잘못이다. 존대할 만한 주체가 아닌데 존대하는 경우다. 이를테면 “손님 옷이 참 예쁘시네요” 같은 말도 손님이 아니라 옷에다가 존대를 함으로써 우스운 말이 된다.

‘우리 나라’를 ‘저희 나라’로 말하는 게 틀렸다는 사실은 이제 다 안다. 마찬가지로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는 ‘저희 회사’ 가 아니라 ‘우리 회사’ 가 맞다. 우리 직원들도 심심찮게 잘못 쓰는 말이 또 있다. “제가 아시는 분이~~” 라며 말을 시작하는 경우다. 도대체 누굴 낮추고 누굴 높이겠다는 의도인지… 불필요한 공손과 낮춤은 오히려 예에 어긋난다.

어떻게 보면 사소하게 넘길 수 있는 문제를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 놓는 것은 요즘 우리의 ‘공손한 문화’ 가 잘못된 탓도 있지만 우리 말의 쓰임과 사용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기 때문이다.